2009년 05월 18일
80년 5월.시민의 역사.
오늘은,성년의 날인 동시에 29년째 되어가는 5.18입니다.
몇년 전 다른 블로그에서, 80년 그날에 있었던 부모님의 일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서 썼지만
주모자를 달랑 1년만 징역살이 시켜놓고, 광주 앞에서 뻣뻣이 얼굴들며 사는 전씨와 노씨를 생각하니
지금도 속은 뒤틀립니다.
.....그래도 잘 해결될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여기다 다시,그 날 있었던 일을 좀 풀어놓도록 할께요.
1. 아버지와 어머니의 80년 5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떄 당시에, 따끈따끈한 신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임신 5개월째였구요.
시위니 뭐니 하는 일에 아무런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게 되지요.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쏜다."
어머니는, 지금의 광주 광산구에 있는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광산구가, 광주에 속해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군인들이 광주로 통하는 진입로를 전부 막아버리는 바람에 집에서 버스로 약 30분은 더 걸릴 거리를
임신한 몸으로 걸어갔죠.
그리고 바리케이트에서 장갑차와 총으로 무장한 군인을 만나고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사태가 진정될때까지 어머니를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살았던 광주시민들도 그러했듯,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밤에 불도 못켜고,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충장로나 금남로(구 도청이 있는 곳,광주 최고의 번화가)에 지나가기만해도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던 시절이니까요.거기다 집안에 총알이 날아들어올까봐 창문에 두꺼운 솜이불로 가려놓고 지냈다 합니다.
그러고 지내다가 518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어느날, 집 밖에 담벼락에 숨어 오돌오돌 떠는 군인 몇명을 발견했다 합니다.
그 군인은 서울에서 갓 내려온 운전병으로, 모시던 중위와 함꼐 내려왔다가 시민군에게 들켜서 지프차를 빼앗기고 쫓기던 상태라 했습니다.
어찌 따지면 하등 구해줄 이유 없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집에 불러다 밥을 먹이고, 옷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들을 구해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아버지 남동생,작은 아버지가 강원도에서 군복무중이었거든요.동생생각이 나서 그러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새벽안개를 맞으며 상무대로 총총히 사라졌다 합니다.
2. 친구 아버지의 80년 5월.
친구 아버지는 그 당시에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이었다 합니다.
회사 심부름으로 금남로를 지나가다가 신군부에게 잡혀서 옥살이를 치르고, 고문당했다 합니다.
그래도 후유증 없이 지금껏 잘 지내신다 하니, 그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3. 또 다른 친구 아버지의 80년 5월.
그 친구 아버지는 광주 제일고 근처에서 약재상을 하시는 분입니다.(충장로와 금남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 친구분 아버지이 그날 하셨던 일은
시민군과 데모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숨겨주고 편의를 봐주던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와 술한잔 하다가, 아버지가 518에 겪은 일이 우연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함에 쓴웃음만 지었습니다.
몇년 전 다른 블로그에서, 80년 그날에 있었던 부모님의 일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에는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광주에 살았던 시민들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서 썼지만
주모자를 달랑 1년만 징역살이 시켜놓고, 광주 앞에서 뻣뻣이 얼굴들며 사는 전씨와 노씨를 생각하니
지금도 속은 뒤틀립니다.
.....그래도 잘 해결될 날이 오기를 바라면서 여기다 다시,그 날 있었던 일을 좀 풀어놓도록 할께요.
1. 아버지와 어머니의 80년 5월.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떄 당시에, 따끈따끈한 신혼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임신 5개월째였구요.
시위니 뭐니 하는 일에 아무런 상관없는 일상을 살아가다가 날벼락같은 소식을 듣게 되지요.
"군인이 시민을 향해 총을 쏜다."
어머니는, 지금의 광주 광산구에 있는 학교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광산구가, 광주에 속해있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군인들이 광주로 통하는 진입로를 전부 막아버리는 바람에 집에서 버스로 약 30분은 더 걸릴 거리를
임신한 몸으로 걸어갔죠.
그리고 바리케이트에서 장갑차와 총으로 무장한 군인을 만나고나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사태가 진정될때까지 어머니를 집밖에 나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때 살았던 광주시민들도 그러했듯, 살얼음판을 걷는 듯한 불안속에 살았다고 합니다.
밤에 불도 못켜고, 맘대로 외출도 못하고, 충장로나 금남로(구 도청이 있는 곳,광주 최고의 번화가)에 지나가기만해도 잡혀가서 고문을 당하던 시절이니까요.거기다 집안에 총알이 날아들어올까봐 창문에 두꺼운 솜이불로 가려놓고 지냈다 합니다.
그러고 지내다가 518이 소강상태에 접어드는 어느날, 집 밖에 담벼락에 숨어 오돌오돌 떠는 군인 몇명을 발견했다 합니다.
그 군인은 서울에서 갓 내려온 운전병으로, 모시던 중위와 함꼐 내려왔다가 시민군에게 들켜서 지프차를 빼앗기고 쫓기던 상태라 했습니다.
어찌 따지면 하등 구해줄 이유 없지만 아버지는 그들을 집에 불러다 밥을 먹이고, 옷을 빌려주었습니다.
그들을 구해준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아버지 남동생,작은 아버지가 강원도에서 군복무중이었거든요.동생생각이 나서 그러했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은 새벽안개를 맞으며 상무대로 총총히 사라졌다 합니다.
2. 친구 아버지의 80년 5월.
친구 아버지는 그 당시에 20대 초반의 사회초년생이었다 합니다.
회사 심부름으로 금남로를 지나가다가 신군부에게 잡혀서 옥살이를 치르고, 고문당했다 합니다.
그래도 후유증 없이 지금껏 잘 지내신다 하니, 그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요.
3. 또 다른 친구 아버지의 80년 5월.
그 친구 아버지는 광주 제일고 근처에서 약재상을 하시는 분입니다.(충장로와 금남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입니다.
그 친구분 아버지이 그날 하셨던 일은
시민군과 데모에 참여한 대학생들을 숨겨주고 편의를 봐주던 일을 했습니다.
나중에 그 친구와 술한잔 하다가, 아버지가 518에 겪은 일이 우연히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러니함에 쓴웃음만 지었습니다.
# by | 2009/05/18 22:58 | 트랙백 | 덧글(0)







